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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역사
지금의 앙골라 지역에는 선사시대인 기원전 5만 년부터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약 2000년 전에는 반투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주해왔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인 앙골라에 기지를 세우기 시작했다. 17세기 초에 앙골라는 브라질에 있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에 노예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원이 되었다. 1641년에 네덜란드 군대가 앙골라에서 포르투갈인을 몰아내고 노예무역을 장악했으나 1648년에 포르투갈이 통치권을 되찾았다.

노예무역이 쇠퇴한 후 19세기에 포르투갈 농장주들은 이 곳에서 옥수수, 사탕수수, 담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앙골라를 포르투갈령 서아프리카라고 불렀다. 1920년대 말부터 포르투갈은 앙골라의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포르투갈인 수천 명이 앙골라로 이주해와 사업을 시작했다.

1956년에 앙골라 국민은 앙골라인민해방운동을 조직했고 1961년에는 당원들이 루안다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 폭동은 아주 빠르게 전국으로 퍼졌고 곧 유혈 게릴라전으로 발전했으나 포르투갈 군대가 폭동을 진압했다.

이 폭동 이후 문화적∙정치적 차이로 반란 세력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1962년에 북부 반란세력의 일부가 앙골라해방전선을 조직했고, 4년 후에는 남부 반란세력이 앙골라완전독립국가동맹을 조직했다. 1974년에 포르투갈에서는 군 장교들이 정부를 무너뜨렸으며 1975년 1월에 이 군사정부는 앙골라를 독립시키기로 결정했다. 세 반란 세력은 앙골라의 통치권을 놓고 내전을 벌였다.

앙골라는 1975년 11월 11일에 포르투갈에서 독립했으나 앙골라인민해방운동과 앙골라해방전선∙앙골라완전독립국가동맹 연합군 사이에는 내전이 계속되었다. 1974년 4월에 옛 소련과 쿠바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은 앙골라인민해방운동이 내전에서 승리해 마르크스주의 정부를 세웠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많은 문제에 부딪쳤다. 앙골라완전독립국가동맹의 당원들이 정부에 대해 게릴라전 공격을 시작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들을 지원했다. 앙골라해방전선도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가 1984년에 활동을 멈추었다. 또한 앙골라에서 유럽인들이 떠나자 관리자와 기술자가 부족하게 되고 여러 산업체와 대규모 농장의 운영이 어려워져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정부는 내전으로 발생한 어려움을 극복할 여러 가지 사업을 시작했다. 정부가 많은 사업체를 관리하고 교사와 기술자도 훈련시켰다. 옛 소련과 쿠바를 비롯한 여러 공산국가들이 재정적∙기술적 지원을 했지만 정부는 비공산국가들도 앙골라에 사업 투자를 하도록 장려했다.

1988년에 앙골라, 쿠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맺은 협정에 따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앙골라완전독립국가동맹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고 쿠바군도 1991년 중반에는 완전히 철수했다. 1989년에 앙골라 정부와 앙골라완전독립국가동맹은 정전에 동의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1991년에 정부는 모든 정당을 합법화했고, 1992년 말에 실시한 다당제 선거로 연립정부가 탄생했다. 앙골라인민해방운동의 지도자인 산투스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앙골라완전독립국가동맹이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항의하면서 다시 내전이 발생했다.

1994년에 양측은 평화협정을 맺었다. 1995년에 유엔평화유지군이 그 협정을 감시하기 위해 도착했고, 1997년에 평화유지군은 소규모의 감시단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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